본문 바로가기
Living & History/역사이야기

[쉬운 역사 이야기] 석탄으로 만든 코크스/파스칼, 계산기 발명/타스만, 남쪽 탐험

by 행복 디자이너 2020. 10. 23.
728x90
반응형

[쉬운 역사 이야기] 석탄으로 만든 코크스/파스칼, 계산기 발명/타스만, 남쪽 탐험

 

석탄으로 만든 코크스
(서기 1642년)

깨끗한 연료의 중요성은

석탄 용해기술 발전으로 이어졌지만

당초에는 그 이유가 산업혁명과는

그다지 관계가 없었다.

1642년 영국 더비셔에서 처음으로 석탄을

코크스를 만들었다.

<출처 : 위키백과>

코크스는 공기가 없는 화덕에서 고온으로

구워낸 역청탄의 찌꺼기로 황이 적다.

태웠을 때 연기가 많이 발생하는 석탄과

달리 코크스는 연기가 거의 없다.

 

당시 영국에서는 삼림 남벌로 목탄이

귀혀져가고 있었다.

석탄은 목탄의 대체연료지만 연기가

많이 발생했다.

1603년 헨리플랫 경은 석탄도 목탄처럼

구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1642년이 되어서야 양조업자들이 맥아를

구울 때 코크스를 사용했다.

1709년 아브라함 다비가 철을 녺이기 위해

코크스를 연료로 한 용광로를 처음 사용했다.

이는 영국을 산업혁명의 길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요기서 잠깐!!

일부 양조업자들은 석탄으로 가공한

맥아의 형편없는 맛을 피할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다.

이들은 석탄위에 젖은 통나무를 올려

가스를 흡수하는 방식으로 옅은색의

페일 몰트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이를 대량 생산할 때에는

코크스를 사용했다.

 


 

파스칼, 계산기 발명
(서기 1642년)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은 16세에 기하학 책을 내고

파스칼의 정리를 만들어

자신이 소년 천재임을 입증했다.

파스칼의 정리는 원뿔에 내접하는

육각형의 대변을 연장할 경우 이들이

교차하는 세 점은 같은 한 직선 위에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수학자 블레즈 파스칼

파스칼은 또한 부친이 사업할 때

이용할 수 있도록 계산기를 발명하기도 했다.

자연현상과 물리, 유체의 움직임에 관심을

가졌던 파스칼은 자연과학,

특히 당시 피어나고 있던 정수학과

유체역학에 크게 공헌 했다.

 

파스칼은 오늘날 기계식 기압계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수은을 채운 관을

이용해 실험했으며, 이것으로 프랑스의

산꼭대기 등 여러 장소에서 기압을 측정했다.

그는 환경과 고도가 같다면 관의 모양이나

높이에 관계없이 수은의 높이는

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파스칼은 또 진공과 관련된 문제도 연구해

파스칼의 법칙을 만들었다.

밀폐된 유체의 어느 곳에 압력을 가해도

압력은 유체 전체에 일정하다는 것도

발견했다.


 

타스만, 남쪽 탐험
(서기 1642년)

네덜란드의 항해가 아벨 얀손 타스만은

네덜란드동인도회사로부터 임무를 받는다.

태평양을 건너 칠레로 가는 요역로를

찾아줄 것과 이전에 탐험가들이

부분적으로 발견했던 오스트레일리아 해안이

이어져서 대남대륙을 형성하고 있는지를

알아봐달라는 것이었다.

<출처 : 위키백과>

출생: 1603년, 네덜란드 Lutjegast

사망 정보: 1659년 10월 10일, 바타비아

본명: Abel Janszoon Tasman

배우자: Joanna Tiercx (1632년–1659년)

국적: 네덜란드, 네덜란드 공화국

자녀: Claesjen Tasman

 

아벌 타스만 claesjen tasman - Google 검색

Learn about Abel Tasman (Explorer): Birthday, bio, family, parents, age, biography, born (date of birth) and all information about Abel Tasman.

www.google.co.kr

아벨 얀손 타스만 자세히 알아보기

 

1642년 그는 인도네시아를 출발해

동쪽으로 탐험하는 과정에서 타즈매니아와

뉴질랜드를 발견했다.

원정대는 이후 통가와 피지섬도 발견한다.

타스만은 바다에서 10개월을 보내면서'

오스트레일리아를 배로 일주했으나

대륙 자체는 보지 못한 채 1643년 6월

바타비아로 돌아왔다.

 

네덜란드 무역회사에서 일하던 중

타스만은 이 남대륙이 정말로 무엇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1644년 다시 출항했다.

카펜티리아만 상륙에 이어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와 서부 해안을

따라 여행을 계속했다.

이 대륙이 가진 부는 드러나지 않은 채로

있었으며, 타스만은 몇 년 후

네덜란드동인도회사를 떠난다.

 

타스만은 유럽의 지식인들에게 대남해에 대한

지리학적 중요 정보를 추가로 제공했으나,

후원자들은 경제적인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

그의 여정에 실패라고 생각했다.

17세기 들어 탐험은 교역에 밀려

푸대접을 받았으며 네덜란드인들은

교역 및 포르투갈로부터 동인도 지배권을

빼앗는 것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었다.

 

요기서 잠깐!

이 지역이 지도에 정확히 그려진 것은

엔데버호에 탑승한 제임스 쿡의 항해에서였다.

1768년 영국을 출발한 쿡은

자신이 발견한 것에 대해 영국 왕실의

소유권을 주장했다.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