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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ing & History/역사이야기

영국 기지 콜카타로 이동/매사추세츠주 마녀재판/표트르 대제 유럽순방

by 행복 디자이너 2020.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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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기지 콜카타로 이동/매사추세츠주 마녀재판/표트르 대제 유럽순방

 

오늘의 짧은 역사 이야기!

영국 기지, 콜카타로 이동 - 서기 1690년

 

영국동인도회사의 기지가 1690년 콜카타로 이동했다.

이는 모굴이 이 회사 수석 지배인 욥 카르넉에게

후글리를 떠나라고 강요한 직후였다.

<출처 : 위키백과>

 

카르넉은 콜카타를 무역기지로 삼고

1700년 이후 포트윌리엄 이라고 불리는

요새를 강화했다.

이 무렵 그는 벵골 총독으로 승인받았다.

영국은 1772년부터 델리로 옮긴 1912년까지

콜카타를 식민수도로 활용했다.

영국 정부는 사실상 동인도 회사의

인도 통치를 1858년 끝내고 통치권을 회수했다.

콜카타는 영국의 상업과 정치적 지배력을

확장시키는 기지로 활용됐다.

 


 

 

 

매사추세츠주 마녀재판 - 서기 1692년

 

어린 소녀 하나가 1692년 2월 병에 걸려죽자,

매사추세츠주 세일럼 마을의 상황은

마녀재판으로 이어졌다.

 

시민 19명이 교수형에 처해지고 80세의

한 노인은 돌에 깔려 죽음을 당했다.

희생자들은 소문이 난무하는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피고인들은 법적 조언도 받지 못했다.

역사가들은 이 마을 근처에서 벌어지는

인디언과의 전쟁, 마녀에 대한 구체적인 믿음,

재산권 분쟁, 마을 내 청교도 간 분열이

대학살의 히스테리로 이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피에 굶주린 이 사태는 곧 잠잠해지고

1711년 피고인 전원은 무죄가 확정됐다.

미국 문화를 대표하는 이 재판은 미국적인

정의가 사라졌음을 알리는 상징이 됐다.

 

여기서 잠깐!

폴리처상을 수상한 극작가 아서 밀러의 작품

크루서블은 세일럼의 마녀사냥을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그는 이를 1950년대의 매카니즘을

언급하기 위해 활용했다.

밀러는 비마활동조사위원회에 소환된 바 있다.

 


 

 

 

표트르 대제, 유럽 순방 - 서기 1697년

 

러시아 황제 표트르 대제는 오스만 제국에 맞서

다른 나라와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측근들과 함께 1697년 유럽순방에 올랐다.

표트르 대제는 또 유럽 문화를 체험하고

서양의 발전을 연구하고자 했다.

이 '대사절단'은 건축, 경제, 군사, 심지어

해부학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진 대제에게는

러시아 근대화에 필요한 매우 귀중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러시아 개혁가인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가 자신의 구상대로 유럽의 한 열강으로

탄생할 수 있도록 힘썼다.

 

표트르와 그 측근들은 외교적 노력은

그가 신분을 숨기고 조선기술과

그밖의 발전된 과학기술을 배우기 위해

경험했던 기업에서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

네덜란드와 영국 정부는 스폐인 왕위계승전쟁에

몰두해 러시아와의 동맹에는 관심이 없었다.

 

<출처 : 위키백과>

 

그러나 유럽의 진보한 기술에 대한 표트르의

지식은 러시아의 국익 증진에 기여했다.

그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조선소에서

4개월 동안 일했고, 유럽의 기술자들을

러시아로 초빙해 산업 현대화를 족진했다.

1698년 귀국해 반란을 진압하고

왕권을 강화했으며, 흑해로부터

발트 해연안으로 자신의 관심을 돌렸다.

표트르 대제의 지도력으로 러시아는

기술, 경제, 문화, 교육에서 커다란 발전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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